제3414호 | 2018-04-30

기업의 목적은 봉사다. 기업은 이익을 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이익을 내기 위해서 비즈니스를 한다면, 그 경우에도 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목적은 봉사다. 훌륭한 서비스에 대한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이윤이다.

- 헨리 포드 

촌철활인 : 한치의 혀로 사람을 살린다!

기업에 있어 이익창출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은 영혼 없이 살아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해관계자에 대한 봉사를 사명으로 하고, 고객을 위한 더 나은 서비스 경쟁에서 이기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이익입니다.

오늘은 위 좋은 글에서 소개되시는 헨리 포드(Henry Ford)님에 대한 간단한 프로필을 알아보겠습니다. 1863년 미국 미시간 주의 웨인 마을 출생으로 농부의 장남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보다는 기계에 관심이 많았으며, 헨리 포드는 16세가 되기 전 증기 자동차를 목격한 후 농장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그 시절 디트로이트에는 많은 기계를 만드는 공장들이 있었는데 농장을 떠나 처음 간 곳이 바로 디트로이트입니다. 그곳에서 작은 공장을 첫 직장으로 들어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일을 못하거나 개으름을 피워 쫓겨난 것이 아닌 공장을 위해 작업성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획안을 제출하고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 노동자들 탓에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의 생각과 노동자들의 생각이 일치하지 못해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헨리 포드의 생각으로는 작업성과 생산성이 향상됨으로 효율적인 일을 함은 물론 더 많은 수익창출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나 그 시절에는 구조조정을 싫어하여 공감 받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 에디슨 일루미네이팅사에 취직을 하여 점차 그 능력을 인정받고 수석 기사의 자리까지 올라갔으며, 34세가 되던 해에는 엔진을 발명해 냈는데 그것을 본 토머스 에디슨은 헨리 포드를 인정하고 격려해주었으며 1899년에는 기술 책임자의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는 그 자신감을 토대로 1903년 동업자를 모아 1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포드 모터스를 설립하였으며, 1908년 세계 최초의 대중 차 T형 포드를 양산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1913년 조립공정 방식인 포드 시스템을 확립, 1914년 최저임금 등 노동정책을 펼치고, 1924년 자동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영향력 있는 자동차제조기업이 되었다고 하며, 1930년대에 그의 아들인 에셀 포드(Edsel Ford)가 포드사의 대표직을 맡게 되며, 헨리 포드가 고집하던 무 옵션의 단일 품종 양산과는 별개로 A형을 비롯해 여러 모델을 개발하고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기계를 사랑한 헨리포드 자동차의 왕으로 불리고 있으며, 세계 최초로 억만장자를 손에 쥐었고 20세기 위대한 기업가 중 1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윗글의 개인 소견을 말씀드려볼게요. 위 소개되는 헨리 포드는 포드사에서 갑질 행동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역시 본인이 노동자들에게 베풀고 나서 억지를 쓰는 노동자들에게 악하게 행하였다고 소개됩니다. 자동차기업 최초로 주5일 근무와 8시간 근무시간을 시행함은 물론 타 생산직보다 2배가량 높은 급여를 지급하며, 여태껏 그 기준을 지켜온 자본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람이란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고자 갑질 행동을 하며 악역을 맡았다고 보이는데요. 윗글처럼 기업은 이익을 내야 하는데 오로지 힘을 써야 하며, 이익을 냄과 동시에 직원들에게 베푸는 것 역시 힘을 써야한다고 보입니다. 기업이란 회장, 대표, 임원진으로만 구성되어 운영될 수 없으므로 수익창출을 위해 움직이는 노동자들까지 배려하고 베풀어야 한다는 내용 같습니다. 요즘 보여지는 한진그룹의 값질 행위들이 이슈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갑의 위치에 있다고 이를 악용하게 되면 시간이 지나 밝혀지고 기업 이미지에 나쁜 영향이 발생하니 모두 초심을 잃지 마시고 배려하고 베풀고 섬기는 마음가짐으로 즐거운 일과 보내시기 바랍니다.